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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 연합오순절교회

United Pentecostal Church of Korea

한국연합오순절교회는 1965년에 엘톤 버나드(Elton D. Bernard) 선교사 가족에서 비롯된다. 그는 6.25 전쟁에 참전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다시 한국에 오게 된다.
한국에서 선교사 일을 마치고 1985년 6월에 떠난 버나드 목사의 저서 ‘한국의 개척자 The Korean Frontier’에는 사도행전과 똑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의 글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966년 2월, 처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표적으로 방언을 말하는 -물과 성령으로 완전히 거듭난- 성도를 얻었다. 1968년에 본부 교회 건물이 세워지고 1969년 2월 25일에 문화체육부에 ‘재단법인 한국 연합 오순절교회'로 등록하였다.

1970년 선교 5년 만에 전국에 10개 교회, 1570명의 신자들이 생겼다. 같은 해 10월에 본부 교회에 출석한 교인은 모두 459명이었고 지방의 신태인 교회에도 457명이 출석하였다. 1971년 여러 교파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계획하고 한국에서 유명한 부흥사들과 목회자들 100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그 중 한 명이 와서 가르쳐 달라며 우리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이미 성령 침례를 받았던 그는 인천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하는 감리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다. 10월에 그에게 가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다시 주었다. 그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1500~2000여 명의 교인이 모인 가운데 완전한 복음을 설교했고 그의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1972년 4월 24~29일에는 이 기도원에 모인 2000여 명의 교인 앞에서 모든 설교를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이 했는데, 수백 명이 성령 침례를 받았고 성령 안에서 춤추고 부르짖고 외치며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은혜로운 장관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산으로 올라가 철야 기도로 부르짖었는데, 산 사방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령 침례를 받았는지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홍제동 본부 교회로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장년들만 450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그 주에 60명이 성령 침례를 받고 66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고 간증을 했는데, 한 쪽 눈을 실명했던 사람은 성령을 받고 다시 보게 되었으며, 폐가 망가져 치료를 포기했던 두 사람도 완전히 치료받고 큰 소리로 간증하였다. 어린이 여름 성경 학교 때도 많은 어린이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여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어린이들의 순수한 간증은 듣는 이를 감동케 했다.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5일에 인천 마가 다락방 기도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약간의 교리적 반대가 있었으나 진리의 말씀으로 싸웠다. 예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기 위한 대형 풀장이 만들어졌다.

1시간 동안 7명의 교역자가 550명의 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고,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4명의 타교단 목사들을 포함한 50명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이 집회에서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은 200명 이상이었다. 이어서 8월 14~19일에 2000여 명이 모인 기도원 부흥회에 강사로 초청되어 갔다. 교인은 성령에 취하여 일어서서 찬양하고 춤을 추었으며 안수를 통하여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또한 성령 침례를 받았다.

한 목회자가 우리가 가르친 모든 가르침을 반대하고 일어나 다른 이들에게도 반대하도록 충동질했지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진리의 말씀을 설교했다. 150여 명이 오순절 날과 똑같이 성령 침례를 받았고 52명이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더 많은 교인들이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지만, 한국 역사에 기록될 만한 홍수로 말미암아 침례식은 중단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후의 예배에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12월에는 12명의 타교단 목회자들에게 사도적인 진리를 가르쳤고, 그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 1973년 1월 첫 주일의 목회자 세미나에는 우리가 인도했던 집회나 다른 집회에서 성령 침례를 받아 우리와 함께 사역하려는 20명의 목회자들이 모였다. 그들 중 절반 가량은 주 예수 이름으로 이미 침례를 받았으며 6명이 이 세미나에서 예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다. 2월에 다른 교파의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43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3월에는 한 곳에서 8명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200여 명의 장년들 중 불과 몇 사람만이 성령을 받았던 한 감리교에서는 부흥회 때 14번이나 설교했는데 한 번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던 50여명이 교인이 되었다.

4월 30일부터 5월 4일까지, 청와대에서 무척 가까운 곳인 진명여고 강당(삼일당)을 빌려 집회를 열었다. 일제의 잔인한 칼은 한민족의 무수한 피를 흘렸지만, 예수님의 보혈은 이들의 죄를 영원히 씻기는 역사를 이루셨다. 174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200여 명이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 5월 8일부터 11일 기독교 수양관에서 340명의 비오순절교파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3일간의 집회를 열었다.

열 번의 설교를 했고 설교가 끝나자 그들은 강단 앞으로 달려 나와 우리의 다리를 붙잡고 특별 기도를 간청했다.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들이 “제가 성령 충만을 받도록 꼭 좀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외쳤으며 자기들의 사역에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모든 목회자들이 안수를 부탁했다. 25명의 목회자들이 거기 풀장에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다른 15명의 목회자들은 밤에 본부 교회로 와서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하 생략>